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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May 15, 2014

[SERI] 생명이 자본이다

생명이 자본이다

생명이 자본이다

생명이 자본이다 정보
저 자이어령
발행일2014
형태사항Paperback, 376P
ISBN
가 격₩ 1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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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자본이다 전문가서평 생명이 자본이다 목차
한근태 소장(한스컨설팅)



인류에게 가장 적합한 제도는 무얼까요? 사회주의는 아닙니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그 사실이 검증 되었습니다. 자본주의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람이 돈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사람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빈부의 격차는 날로 커지고 여기저기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한국의 지성 이어령 교수는 이런 자본주의 대안으로 ‘생명’과 ‘사랑’을 주장합니다.

불황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자세
자연은 모든 것을 잘 받아들입니다. 그는 resignation을 강조합니다. 체념이 아닌 감수입니다. 쓴 것을 달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추위가 그렇습니다. 생물들은 추위에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동면이 그것입니다. 개구리는 자신의 몸을 아예 얼립니다. 동물의 동면은 단순한 피한이나 방한이 아닙니다. 가혹한 경쟁과 노동으로부터 풀려나는 따뜻한 시간입니다. 자연이 가져다 준 사랑이요 축복입니다. 모든 생물에게 실재하는 추위는 결코 잔인하거나 적대적인 관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업하는 사람은 누구나 불황을 두려워합니다. '불황'을 뜻하는 영어의 '리세션(recession)'은 라틴어 '리세스'에서 나왔습니다. 멈춤과 쉼이란 의미입니다. 잠시 성장과 전진을 멈추고 휴식한다는 의미입니다. 경제활동이 과열되고 더 이상 시장이 지탱할 수 없는 번영의 극에 이르면 여름과 가을철이 지나 겨울이 오는 것처럼 경제에도 동면의 철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긴 안목으로 보면 생물의 동면처럼 불황의 엄동설한은 지극히 자연스런 자연현상입니다. 불황은 인간에게 동면 같은 구제 역할을 합니다. 불황의 추위를 통해서만이 끝없이 팽창하는 자본주의의 욕구로부터 풀려날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호흡을 찾아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를 저을 때 “어기여차”라고 합니다. “어기여”라고 할 때 힘을 빼고 멈추었다 “차”라고 할 때 한 번에 힘을 줍니다. 강약의 리듬이 있습니다. 멈추는 “어기여”가 힘을 쏟는 “차”보다 언제나 더 길고 비중도 큽니다. 아일랜드인들은 배를 끌 때 “홀리호헙(holihohup)”이라고 합니다. “홀리호”라고 숨을 쉬다 “헙”이라고 말하는 순간 힘을 줍니다. 이처럼 어느 나라든지 힘주는 순간보다 긴 준비시간이 필요 합니다. 불황은 또 다른 발전을 위한 준비기간입니다. 남들이 200년 걸려 쌓아온 산업화를 우리는 불과 20여 년 만에 해치웠습니다. 이런 한국인에게 필요한 것은 “어기여차”의 잃어버린 호흡입니다. “어기여”를 뺀 “차, 차, 차”만 갖고는 숨이 찬 것이지요. 쉬엄쉬엄 일한다는 한국의 일하는 양식을 살리면서 생산성을 살리는 지혜를 찾아야 합니다.

자연에서의 경쟁은 경쟁이 아니다
우리는 자연을 바라볼 때 경쟁 혹은 치열한 생존경쟁으로 이해하곤 합니다. 식물은 꽃을 피우고 꿀을 만듭니다. 벌과 나비는 애써 만든 꿀을 따 갑니다. 식물입장에서 착취당하는 것이지만 생명 측면에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꽃은 꿀을 통해 벌과 나비를 유인해 생명을 번식합니다. 꿀 제공은 생식을 위한 꽃의 전략입니다. 열매도 그렇습니다. 힘들게 만든 열매를 새들이 쪼아 먹고 사람들이 따서 먹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씨앗을 퍼뜨리는 겁니다. 빼앗는 것 같지만 사실은 도와주는 것이지요. 자연이란 이런 겁니다. 먹는 쪽이 유리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자연의 이런 모습은 얼핏 보면 경쟁 같지만, 사실은 조화이고 균형입니다. 이런 모습을 자본주의도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본주의에 허들링을 적용한다면?
남극의 황제펭귄은 협동의 귀재입니다. 개체만으로는 남극특유의 눈보라 블리자드를 막아낼 수는 없습니다. 이들은 허들링으로 이를 이겨냅니다. 몸으로 방풍벽을 친 펭귄들은 서로의 체온을 모아 바깥보다 10도나 높은 따뜻한 내부 공간을 만듭니다. 바깥 쪽 펭귄은 영하 50도 추위에 노출되어 있지만 역할변화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고 격려하며 추위를 이겨냅니다. 자발적 공동체이며 공동선의 모범입니다. 남극의 냉혹한 추위는 오히려 서로의 생명을 부축하고 공감하고 포옹하는 삶의 양식을 만들어 준 셈입니다. 밖의 주변에서 일생동안 떨다 죽는 인간사회와는 다릅니다. 남극의 빙산에는 너와 내가 없습니다. 공평한 질서 속에서 살아갑니다.

자본 'capital'의 어원은 ‘caput'
원래 자본 ‘capital’이란 말은 양과 같은 '가축의 머리'를 뜻하는 라틴어 'caput'에서 나온 말입니다. 가축은 생명 그 자체입니다. 양은 기독교에서는 구세주를 의미하는 중요한 메타포입니다. 자본의 資도 바다의 생명 조개 패에서 비롯된 겁니다. 원래 자본은 생명인 것입니다. 잘 살려고 자본주의를 만들었는데 지나쳐서 자본이 우리 주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피와 땀과 눈물이 흐르는 따뜻한 자본주의, 생명이 우선이 자본주의의 회복입니다. 아픔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자본주의입니다. 생명이 자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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